브라질 다음으로 남미의 큰 나라는 아르헨티나. 이들이 중심으로 만든 1991년에 창설한 남미공동시장. MERCOSUR. 그러나 과연 그렇게 성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초기 MERCOSUR 의 회원국이였던 3개국을 살펴 보겠다.
아르헨티나
“엄마 찾아 삼만리’ 라는 만화가 있다. (이 만화를 안다면 연식이 좀 있다는 뜻일 듯^^) 줄거리는
이탈리아의 제노바에 사는 소년 마르코의 엄마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2] 몸도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정부 일을 하러 떠났는데, 편지도 돈도 꼬박꼬박 보내오던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에 어머니를 찾아 어린 나이에 혼자서 먼 여행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여행담이다. 원작이 쓰여진 19세기 말 당시의 아르헨티나는 밀과 쇠고기 수출에 기반을 둔 신흥 부국이었고, 노동력 부족으로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의 이민자들의 이민을 많이 받아들였다.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 불리며 번창했다
그렇게 번창했던 아르헨티나. 하지만 지금은 경제가 폭망한 대표적 사례가 되어 있다.
먼저 개관을 보면 2,766,890 km2의 면적을 차지하여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넓으며,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나라이다.
인구는 4천 3백만명이며, 일인당 GDP는 18,000 달러이다.
남미의 타 국가들처럼 인디오들이 원래 거주했고, 1516년 스페인이 들어오면서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이후로 역사가 복잡하지만 1816년 스페인으로 독립을 하였다. 하지만 독립이 우리 나라 독립과는 좀 다른 의미이다.
어쨌든 독립 이후 1870년대부터 해외 투자와 이민자들이 몰려와 1880년부터 1929년 사이에는 세계 10대 부유한 국가가 아르헨티나였다.
지금도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보면 시내에 왕복 10차선의 도로가 있고, 아름다운 유럽식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여전히 밤이면 탱고 공연이 이뤄지고 과거의 번영이 그대로 남아 있다.
1946년 후안 페론이 대통령이 되면서 정치적 변화가 생겨났고, 그의 영부인 에바 페론(에비타로 유명하다.) 이 노동자 계급에서 거물이 되었다.
이후 쿠테타 등 아르헨티나는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1982년 군부 독재가 끝난 이후도 대통령이 계속 좌파와 우파를 번갈아 가며 정치적 혼란은 지속 되고 있다.
경제를 살며보면 주요 사업은 농업과 목축업이다. 총 수출의 50% 이상이다.
팜파스라고 흔히 알려진 대 평원에서 밀과 대두의 생산량이 어마 어마 하다.
하지만 공업은 크게 발달하지 못하였고, 계속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다. 대규모 가스전이 매장되어 있고, 최근 리튬 광산이 개발되는 등 포텐셜은 많다. 앞으로 이를 정부가 잘 운영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해영 입장에서 보면 아르헨티나 시장은 녹녹하지 않다. 각종 외환통제가 너무 심해서 대금을 받기가 쉽지가 않고, 수입업자가 라이선스 받기가 어렵다.
가보면 정말 이 큰 나라가 이리 밖에 못사냐라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소가 사람보다 많은 나라-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오른 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 우루과이.
원래 브라질에 속한 시스플라티나주였으나 브라질과 전쟁을 했고 아르헨티나의 도움을 받아 독립했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아르헨티나의 우방이다. 스페인어가 모국어이다.
인구는 348만 명으로 아주 작다. 남미에서는 국가 청렴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지구 반대면의 나라이지만 우루과이는 1930년 첫 월드컵 개최지로 유명하다. 또한 우리에게는 우루과이 라운드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와 우루과이 사이 교역은 많지 않다. 일단 시장 규모가 작아서 한국 업체들의 관심이 많이 떨어지는 국가이다.
내륙 국가 – 파라과이
남미에서 한국 교민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파라과이라는 설이 있다.
비자 받기가 상대적으로 쉬어서 여기를 통해 주변 브라질, 볼리비아로 갔다는 설이 있다. 물론 전체 교민 수로는 브라질이 가장 많을 것이지만 파라과이도 교민들이 꽤 거주하고 있다.
파라과이라는 국호는 파라과이 강에서 유래한 것인데, 과라니어로 “여러 색깔의 강”이라고 한다.
영화 미션에 나오는 과라니 족들이 이 지역에서 살고 있다.
파라과이 인구는 7백만명으로 그리 많지 않고, 일인당 GDP 역시 5천불 정도로 경제 규모도 크지 않다.
1525년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 들어오면서 예수회의 중심 도시가 되었고, 1811년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가장 파라과이가 약해진 것은 브라질, 아르헨티나,우루과이 3국 동맹과 5년 전쟁을 하면서 국력이 크게 쇠퇴했다. 이로 인해 세계 최대의 댐인 이구아수 폭포 주변의 땅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잃게 되었다.
이구아수 폭포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의 국경이 되어 있다.
브라질과 파라과이 사이의 파라나 강에는 세계 최대의 수력댐인 이타이푸 댐이 있다. 브라질 전체의 1/4, 파라과이 1/3의 전력을 공급하는 이 댐은 실제로 가보면 규모가 엄청 나다.
정치는 유사하게 군부 독재와 쿠테타 등으로 시끄러웠다. 독립국가들은 이렇게 독재, 쿠테타가 늘 빈번한가 보다.
경제적으로 보면 여전히 농업이 주요 사업이다. 그러나 주변 국가와 비교해서 그리 크지는 않다. 그래도 파라과이는 수입이 매우 자유로운 편이다. 제조시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이 면세이다. 그래서 브라질 국경 도시, CIUDADE DEL ESTE가 국경 무역으로 번창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 모 회사의 샴푸 케라 00 은 파라과이 국민 샴푸가 되었다. 한국인이 수입하기 시작하여 현지인에 큰 인기를 얻었고, 지금은 케라 00 빌딩도 지어졌다.
최근에는 또한 한류가 여기서도 유행이다. 이런 점을 활용한다면 작지만 우회 수출기지로 파라과이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서두에 말한 것처럼 이들 나라는 남미공동시장이다. 이후 칠레와 볼리비아가 회원국이 되었지만 실제 시장 내 교역량은 많지 않다. 아마도 각 국가별 현안이 너무 많고, 산업 구조 수준 등이 차이가 나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름은 있지만 활용도는 미지수인 셈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극장을 개조한 서점]

[ 헬기에서 바라 본 파라과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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